숲,나무를 심다/숲 영화이야기

코쿠리코 언덕에서, 그곳 따스한 기억

커피우유- 2011. 10. 5. 10:39

 

 

10월의 첫 날 첫 시간을 지브리의 선물같은 영화와 함께 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역시 지브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예쁜 화면과 잔잔한 유머, 그리고 섬세한 일상묘사가 일품이다.

석유곤로에 성냥불로 불을 붙여 밥을 짓는 모습,

등사기를 밀어 학생신문을 인쇄하는 모습,

노을이 내려앉는 시장길 풍경..

장면 하나 하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기억 속에 저장된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사랑이야기란 점에서 지브리의 1995년도작 <귀를 기울이면>이 떠오르는 영화이기도 하다.

할머니와 함께 코쿠리코 하숙집을 운영하는 소녀 '우미'에게 어느 날 나타난 '슌'.

"나는 선배가 좋아요."

우미의 고백을 끌어낼 만큼 멋진 남자다.

 

1920년대에 지어진 학교 동아리방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건물을 지으려는 학교측에 맞서

낡은 건물을 깨끗이 닦고 새로 칠하고 고치고 지켜나가려는 슌과 '카르티에라탱'을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맞물려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깃발을 내 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미와 슌의 모습이 아름답다.

 

낡은 것을 부수고 허물고 잊어버리기보다 그것을 매만지고 가꾸어서 더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게 기억 속의 추억들을 아름답게 재생시키며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어릴 적 다니던 작은 교회는 건물 뒷편으로 인쇄실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등사기로 밀어 매주 주보를 만들어 냈다.

계단을 올라 작은 그 곳 문을 열면 등사기 잉크 냄새가 났다.

습하고 좁은 뒷길, 좁은 계단, 붉은 칠이 되어 있던 낡은 인쇄실 나무문, 등사기 냄새...

이 모두가 지금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됐다.
하얀 페인트로만 칠해져 있던 그 작은 교회도 새로 지어졌고 인쇄실도 사라졌을 테고.

누구도 등사기를 쓰지 않는 세상이니까. 나도 이제 더는 기억 속의 내가 아니니까.

 

 

그렇게 기억 속에서만 머무는 이야기들이 있다.
어린 시절, 어린 내가 보던 젊었던 엄마, 나와 같이 어렸던 친구들 얼굴, 어린 시절의 골목, 그리고 느닷없이 시작되던 첫사랑...

 

가늘게 이어지는 그 기억의 끝으로 조심조심 어두운 벽을 더듬는 마음으로 만나보는 영화.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며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그렇게 느슨하고 포근하고 편안한 시간이다.

조금은 지쳐있던 마음을 가만히 쓰다듬어주는 것 같은.

 

 

 

 

매일 아침 이른 시간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짓는 훈김 도는 부엌이 있고,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이 있고, 주고받는 마음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꿈과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코쿠리코 언덕에서라면 가능할 것 같다.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일.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살아가는 일.

 

그렇게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2011)

Kokurikozaka kara 
7.2
감독
미야자키 고로
출연
나가사와 마사미, 오카다 준이치, 타케시타 케이코, 히이라기 루미, 이시다 유리코
정보
애니메이션, 로맨스/멜로 | 일본 | 91 분 | 2011-09-29
글쓴이 평점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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