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의 숲/숲 속의 짧은 생각

가을, 바느질

커피우유- 2011. 11. 8. 11:46

가을, 나는 나약해진다.

바삭바삭 물기 마른 잎사귀 떨어뜨리는 가을 나무같이 내 안의 물기도 소진되는 계절.

그 가을을 견디고자 바느질감을 붙들고 앉았다.

 

큼직한 체크가 든 기모 원단 세 마, 보얀 첫눈같은 아이보리 극세사 세 마로 원단을 준비했다. 이 원단들로 커튼 한 장씩을 만들어 안방창에 걸어두면 창 틈으로 숭숭 들어오는 찬바람을 겨울 내내 든든하게 막아줄 것이다.

주문한 원단이 도착하면 우선 원단을 세탁해 준다.

깨끗이 세탁한 원단을 베란다에 널어 말리면서부터 즐거운 바느질은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

 

보송보송 잘 마른 원단을 펼쳐놓고 시접을 접어 넣으며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박음질을 해 준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드라마,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 그 어느 것과도 잘 어울리는 게 바느질이다. 온전히 바느질에 집중하며 흘깃흘깃 스낵 집어먹듯 보고 듣는 방송이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보다는 낫다.

 

바느질 할 때의 식사는 간단할 수록 좋다. 마음이 이미 바느질감 위에 고정되어 있기에 제대로 앉아 식사할 마음 따위는 없는 것이다. 냉동실에 삶아 넣어둔 옥수수 두 개를 꺼내어 찜기에 쪄 내고 우유 한 잔 곁들이면 흡족하다. 금새 먹고 바느질에 다시 몰두할 수 있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드디어 커튼이 완성되었다.

 

도톰한 겨울 커튼을 창에 걸어 두고 부신 눈으로 거리를 나서면 그새 가을 낙엽도 도톰하게 나무 아래로 쌓여 가고 있다. 가을이 한 웅큼 내던져진 거리..

이제 됐다. 곧 겨울이 올테니.

가을앓이도 끝이다.

 

 

 

 극세사와 기모체크로 만든 커튼/made by 커피우유.  

 

 

 

가을에 지지 않고 가을을 보내는 방법

- 하인리히 뵐의 소설 읽기

  그의 글은 바느질과 마찬가지로 좀체로 발을 뺄 수가 없다.

- 겨울 커튼 손바느질로 완성하기

  몰입도는 순도 100%. 가을이 겨울이 되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