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을지로순환선

커피우유- 2010. 9. 30. 16:09

도서관에서 <심야식당>을 찾다가,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를 찾다가 우연히 만났다.

<을지로 순환선>이라는 제목의 책.

화보집 같기도 하고 만화같기도 하고 포장마차 속 뜨거운 우동 국물같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

 

겉표지를 펴 놓고 한참을 숨은 그림찾기하듯 들여다보았다.

집 위로 집이 쌓이는 산동네가 보이고 장독에서 된장을 푸는 할머니가 보이고, 화단을 돌보는 사람, 좋은 일이 있는지 세탁소에서 양복을 빌려가는 사람, 자전거를 이고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도 보이고 고물상도 보인다.

이 모두가 지하철에서 내다보는 창 밖 풍경의 일부이다.

 

                                                                                                                      을지로순환선, 최호철, 2000년

 

 

어쩜 이리 촘촘한 그림이 있을까.

한 장의 그림 속에 촘촘한 인생을 빼곡히 들여놓고 무의미한 생은 없는 거라고, 무의미한 존재는 없는 거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작지만 내가 사는 이곳이, 이 터전이 세상의 중심이다>

 

드디어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만난 여백 위의 한 줄.

아. 너무나 기대감을 안겨주는 첫 페이지다.

 

신도림-문래-영등포구청-당산-합정-홍대입구-신촌-이대입구-아현-충정로-시청-을지로입구-을지로 4가-동대문운동장-신당-상왕십리-왕십리-한양대-뚝섬-성수-건대입구-구의-강변-성내-잠실-신천-종합운동장-삼성-선릉-역삼-강남-교대-서초-방배-사당-낙성대-서울대입구-봉천-신림-신대방-구로-대림-신도림

 

그에게 을지로 순환선은 <끊임없이 거대한 도시의 일터와 쉼터 사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맴도는>것이다.

 

이 <을지로 순환선>을 읽으며 <을지로 순환선>에 올라 작가 최호철 그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따뜻한 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세상엔 따뜻한 것이 너무 많아"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그 따뜻한 것이 때로는 아득해지고 슬퍼지지만 우리는 그 슬픔 때문에 그나마 체온을 유지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흙장난, 최호철, 1996년

 

 

'와우산' 첫 그림을 펴 놓고 또 한없이 들여다 보게 된다.

꿈처럼 이어지는 길이 있고 집들이 있고 거기 사람이 있다.

 

그의 그림은 사람에 집중되어 있다. 판교택지개발지구를 그린 '돈이 자라는 땅'에서도 "살고 있음"이라는 팻말을 세워두었다. 그렇게 그의 그림 속에는 누군가 살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남루할지라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거나 어쩌면 애써 외면했을 사람들도 있다.

 

을지로순환선, 최호철, 2000년

 

그림 속 인물들은 대개 시무룩한 표정이거나 무표정한데

이상하게도 책 속의 그림여행을 마치고 마지막장을 덮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것이 누구든 삶의 한 줄 한 줄을 소중히기억해주고 담아주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찬란하지 않은 생이 없다.

 

그림으로도 이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구나 알려주는 책. <을지로 순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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