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오솔길 세번째 벤치/거기 숨 쉬는 일상

머리카락 자르는 날

커피우유- 2010. 3. 24. 15:38

황사가 끝날 무렵이었는데 방심했는지 지난 주 감기가 왔다.

그리고 제법 감기가 끝나가고 기운이 조금 날 무렵 아이의 머리카락 자르는 날로 잡았다.

용감하게 가위 하나로 쑹덩쑹덩 해 나가는 컷트.

태어난 이후 계속 잘라준 터라 이젠 겁이 나지 않는다.

그 날의 머리카락 길이는 정수리에서부터 결정한다.

정수리에서부터 좀 짧다싶게 잘라진 날은 전체적으로 조금 짧은 듯한 컷트가 된다.

봄이니까 조금 짧게 잘라보기로 한다. 기분도 더 산뜻해질거야...

왼손잡이인 나는 오른손으로 자를 머리카락의 길이를 가늠하며 잡고 왼손으로 가위질을 한다.

머리카락을 잡을 때 비스듬히 옆으로 잡으면 실패할 확률은 별로 없다.

남편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마다 눈여겨 본 것-

 

아주 어릴 때는 머리카락을 자르면 사각- 자르는 소리도 무서워하고 머리카락이 아플거라며 울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젠 머리카락이 얼굴에 떨어져 간지러운 것만 빼고는 잘 참는다.

TV를 보여주며 자르기도 하고, 입에 사탕을 물려 자르기도 하고, 욕조에서 물놀이 하는 동안 자르기도 했다.

숱도 많지 않고 차분하게 내려앉는 머리라 사실 실력이 별로 없어도 스타일이 잘 나오는 머릿결이다.

아이가 자라고, 자라는 동안 아이의 머리카락 잘라주면서 자르는 실력도 같이 늘고 있다.

같이 욕실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만지고 길어진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일,

그건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행복한 거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난 그 거울을 들여다 볼 날이 있겠지.

어릴 때는 자라기를 기다리다가 다 자란 후에는 자라던 날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오겠지.

그건 오늘 내가 행복해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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