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기억 속 노르스름하고 따스한 빛 - 아르헨티나 할머니

커피우유- 2010. 11. 11. 18:35

기억의 어딘가에 웃목이 있고 아랫목이 있다.

아랫목의 기억은 오늘처럼 심산하게 바람이 창을 흔드는 날 더 절묘하게 떠오른다. 어린 시절 아랫목은 도툼한 이불이 깔려 있었다. 엄마가 호청을 빨아 한 땀 한 땀 새로 입힌 솜이불. 그 이불에 발을 넣고 무릎까지 이불을 끌어당기고 앉아 귤을 까먹던 겨울 저녁. 부엌에선 엄마의 저녁준비 소리가 달그락 거리고 TV화면은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었다. 그런 날도 있었다. 문득 돌아보니-

 

<아르헨티나 할머니> 이 책이 꼭 그런 느낌이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아랫목, 그 따스하고 포근하고 솔솔 잠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아랫목에 끼어 앉은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아랫목을 추억하며 기분좋게 읽은 책.. <아르헨티나 할머니>

 

 

*

 

아르헨티나 할머니. 이 책.. 참 이쁜 책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를 만나는 첫 책인데 이 한 권으로 그녀를 알아버린 것 같다. 좀머씨 이야기를 읽으며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처럼-  사실 누군가에게 반하는데 그리 많은 정보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살아가면서 어떤 순간은 꼭 정지된 화면처럼 지-지- 잡음과 함께 제자리에서 흔들리거나 버퍼링을 반복하며 기억 속에 머무는 것 같다. 작가는 생애의 어느 시간, 그런 짧은 순간들의 느낌을 참 이쁘게도 잡아낸다. 그녀의 서술 속에서 그 기억들은 크레파스로만 그림을 그리던 유년기의 그림처럼 선명한 색채를 띄는 것이다.

 

<그 때 먹었던 과자의 참깨맛을, 그 때 마셨던 우유의 시원한 맛을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고, 봄볕에 몸이 따끈따끈했다>

 

책 속의 삽화처럼 이쁜 서술.. 이 구절만큼 맘에 드는 부분이 사랑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사랑할 때는 <아른아른한, 예쁜 천 같은 것이 살랑살랑거리고 그 너머는 확실하게 보이지가>  않는단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짜증스럽도록 또렷하게 보이는 거야. 그게 부부란 거겠지.> 라고.

콩. 깍. 지.

흔히 우리가 콩깍지라고 세음절로 말하는 이야기를 어쩜 이리 이쁘게도 표현했을까.

 

 

                                                                                       책 속의 삽화 -요시모토 나라 그림

 

 

이 책은 미쓰코라는 아이의 성장기인 동시에 미쓰코의 기억 속 아르헨티나 할머니에 대한 추억담이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야기지만 사실 그건 어떤 눈으로 보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였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사실 동네의 말거리였고, 웃음거리였고 소외되고 고립된 존재였다. 그녀의 빌딩에 미쓰코의 아버지가 들어가기 전까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동네 어귀에 다 무너져 가는 건물이 있었고, 거기에는 오래전부터 아줌마 하나가 살았다. 내가 어렸을 때도 아줌마였으니까, 지금은 할머니라 불러도 좋을 나이일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그 건물을 '아르헨티나 빌딩'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아줌마를 '아르헨티나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러나 미쓰코가 아르헨티나 할머니 그녀의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미쓰코를 따뜻하게 껴안아준 순간. 미쓰코역시 그녀의 아버지처럼 아르헨티나 할머니에 용해되고 만다.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기적처럼- >이었다. 그렇게 미쓰코의 우주에 나타난 아르헨티나 할머니.

미쓰코는 아르헨티나 할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배운다.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게 무엇인지도 아르헨티나 할머니에게 배웠다. 물때가 낀 낡은 법랑컵에 밀크티를 마시고, 고양이 털이 오래된 먼지와 엉켜 뒹구는 거실이었지만 거기도 사랑이 있었고, 누군가 솔솔 쏟아지는 잠을 잘 수 있는 편안함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그녀의 집은 사람이 그저 사람을 용인하고 품어주는 둥지같은 곳이었다.

마치 어린 날의 아랫목처럼- 한없이 너그럽던 어린 날의 외가처럼-

 

너무 재고, 따지고, 분별하기 좋아하는 시대에 가끔은 아르헨티나 할머니처럼 그저 흐르는 삶도 괜찮을 것 같다.

좀 느슨해보이고 좀 허술해 보여도, 죽어서 누군가에게 노르스름하고 따스한 빛으로 기억될 수만 있다면.

 

 

                                                                                                           삽화. 요시모토 나라

 

 

*

 

<슬픔과 그리움보다 즐거웠던 일들이 무수히 되살아나고 아무리 복잡한 길거리에서도 그날의 날씨에 상관없이

신선한 공기가 싸하게 가슴으로 흘러 들어온다. 마치 기적처럼. >

<그리고 가슴 언저리가 노르스름하고 따스한 빛으로 채워지고, 행복이 찡하게 온몸으로 번진다.>

-미쓰코가 기억하는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모습이다.

 

<정말 아름다운 여자는 보고 또 봐도 어떤 얼굴인지 기억할 수 없는 법이지.>

-미쓰코 아버지가 기억하는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모습이다.

 

이것만 보아도 분명 행복한 삶이었지 않을까. 사랑스러운 그녀. 아르헨티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