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심야식당

커피우유- 2010. 11. 10. 13:02

맛있는 음식은 덥석 베어 물기보다 야금야금 아껴먹고 싶은 법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아껴보고 싶은 책 <심야식당>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유년의 따스한 기억과 죽음이 함께 뒤섞여 밥집이 된다.

밤 12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면 문을 닫는 심야식당.

메뉴는 돼지고기 정식 한 가지. 대신 주문하면 재료가 있는 한 어떤 것이든 만들어준다.

나만의 맞춤식당이라고 해야할까. 내 추억에 걸맞는 음식,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에 걸맞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곳. 심야식당에서-

 

 

 

*

 

나는 이 만화가 좋다. 이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허술함이 좋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포동포동하다. 동글동글 얼마나 편안한 이미지인지... 어딘가 빈틈이 있고, 그래서 아킬레스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인물들. 그 허술함 때문에 안아주고 싶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싶고, 고개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심야식당 1권에서 5권을 읽으며 특별히 맘이 가는 인물은 스트립걸 마릴린과 마유미다.

매번 다이어트의 실패로 오는 요요현상으로 점점 몸의 부피가 커지는 마유미씨. 그래서 만화 속 그녀의 별명은 '리바운드의 여왕'이다. 그러나 맛있게 어묵국 한 그릇, 아니 몇 그릇을 뚝딱 비워내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__^

마릴린, 그녀는 당당함과 태연함이 이쁘다.

 

 

                                   -리바운드의 여왕. 마유미씨. ^__^

 

 

 

 

실패하고 좌절하고 자주 무너지지만 그럴수록 그들 안의 인간적인 따뜻함은 커져만 간다.

그래서 눅눅하지 않고 포슬포슬 보송함이 다시 복원되는 것이다.

 

이 인물들의 중심에는 식당의 오너가 있다.

그는 크게 인물들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개개의 인물들을 하나로 응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심야식당을 찾는 손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기억하고 그들의 변화도 누구보다 빨리 집어내고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안다.

온갖 음식의 냄새가 뒤섞인 밥집에서 행복을 만나고 위로를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얘기에 귀기울여 주는 이가 있어서 그들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다른 선택이 된다.

 

 

*

 

 

심야식당에서 나오는 메뉴 하나 하나마다 떠오르는 기억을 되살려보는 것도 재미다. 추억을 맛볼 수 있는 음식과 함께 언제든 그곳을 들르면 때로 지치고 외로운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따뜻한 밥냄새가 나고 뜨거운 국물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밥집 하나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그곳을 찾는 낯선 이들과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외롭지도 않을 것이고, 누군가 내 삶의 기록들을 읽어주고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면 사는게 그리 헛헛하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좁은 테이블에 어깨 부딪혀가며 앉아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밥집.

"오늘은 마음이 왠지 쓸쓸하네요"

하며 심야식당의 특제 어묵국을 주문할 수 있다면 내 가을도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