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의 숲/메타세쿼이아 숲의 오후

창덕궁, 그 아름답고 고요한 숨결

커피우유- 2010. 11. 16. 00:00

 

 

 

비 그친 가을 주말 창덕궁을 찾았다. 일찌감치 나선다고 나섰지만 이미 후원은 매진되었다.

아름다운 건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법인가 보다.

만나지 못하고 가슴에 품은 채 주위를 서성여 보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정전에 들어선다.

정일품, 정이품, 정삼품... 품계석 옆을 나란히 걸어본다.

품계석이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설레임은 더했을지 모른다. 그랬을 것 같다. 정팔품 품계석에 서 보니..

네게서 멀리 서 있을 때 그리움이 이만큼 자라는 것처럼...

 

 

 

 

 

 

 

문 하나를 넘으니 또 다른 이들의 삶의 걸음이 보인다.

빛 바랜 이 문 너머 왕들의 곁에서 숨쉬던 이들이 있었다.

어쩌면 조심조심 걸었을 것 같은 길, 창덕궁에서는 숨소리조차 고요하다.

 

 

 

 

 

 

 

 

나무결이 살아숨쉬는 난간을 눈으로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본다.

색이 바랜 모습 그대로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누군가 걸었을 난간, 누군가 걸었을 계단. 누군가 머물렀을 방 하나 하나 온기가 남아있을 것만 같다.

지금은 가을햇볕이 그 빈자리를 채워줄 뿐이지만-

 

 

 

 

 

한지를 입히지 않은 나무살 틈으로 문. 문. 문이 이어진다.

이 작은 방 안에서도 누군가는 꿈을 꾸며 살았을테지.

아침을 맞고 밤을 맞으면서 그렇게 남모르는 꿈을 꾸며 살지 않았을까.

 

 

 

 

 

 

 

빗물 흐르는 길 하나도 이렇게 이쁘게 만들었나보다.

건물에 잇닿은 작은 마루에 걸터 앉아 한참을 쉬었다.

이곳은 빛이 드리우고, 그림자가 드리우는 뒷채. 뜰 안에 우물이 있고, 굴뚝이 있고, 그을음 자국이 남아있다.

어쩌면 무척 수고로웠을 곳, 그들도 이 좁은 마루에 잠시 앉아 쉬었을까.

 

 

 

 

 

 

 

창덕궁을 거닐면서 문 너머 이어지는 문. 또 문 지나 나타나는 문. 미로같은 그 길을 걷는 것이 너무나 신비롭고 즐거웠다.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창덕궁의 지도. 그저 이 문에서 저문을, 또 다른 문 너머를 헤매일 뿐이었다.

그래도 다 지나지 못했을 것 같은 문. 내가 넘지 못한 문들이 아쉽기만 하다.

 

 

 

 

 

문들의 궁전. 창덕궁.

창문 너머 또 다른 창이 이어진다. 문 너머 또 다른 문이 이어진다.

방과 방이 하나로 만나고 이어지고 이곳과 저곳이 하나로 이어진다.

사면으로 빛이 통하고 바람이 통하고 그 어느 곳도 막힌 곳 없이 서 있는 건물들. 낮은 건물들마다 하늘은 넓어졌다.

그곳에 머무는 이들의 신분은 달라도 땅으로 내려앉는 풍성한 햇볕은 동일했을 아름다운 궁전.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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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우-몇해전 삼청동 거리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배경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