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의 숲/메타세쿼이아 숲의 오후

낙선재, 나즈막한 마지막 안식

커피우유- 2010. 11. 17. 10:01

 

 

 

 

이곳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하게 색이 입혀진 창덕궁 옆으로 낙선재가 있고. 낙선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수수함.  꾸미지 않은, 그러면서 품위와 위엄을 지닌 곳. 무성영화같고 흑백TV 같은 곳, 처음 낙선재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서 낙선재를 검색해보다가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버렸다.

이곳, 우리 나라 왕조의 마지막 아픈 역사가 마지막을 머물다가 잠든 곳이란다. 이 작고 낮은 곳에서 맞이했을 죽음을 생각하니 맘이 무거워졌다. 숙연한 마음으로 사진 속 맨살을 드러낸 나무결을 어루만져 본다.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에 지어진 창덕궁의 건물이다. 본래 이름은 낙선당이었으며, 창경궁에 속해 있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이다.

고종 황제도 이곳에서 지낸 바 있으며, 1917년 창덕궁에 큰 불이 났을 때 순종 황제도 내전 대신 낙선재에 머물렀다. 이곳은 황족들이 마지막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여기서 기거하다 숨졌으며, 1963년 고국으로 돌아온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는 각각 1970년과 1989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덕혜옹주 역시 어려운 삶을 보내다 1962년 낙선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으며, 1989년 사망했다.

 

-위키백과 

 

 

누군가 슬픈 눈으로 서성이는 것만 같다. 이 아름다운 곳이 간직한 이 슬픔이란...

방 하나에 깃들고, 문 하나에 깃들고, 넘나드는 문턱 하나에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지키겠습니다..

 

 

 

 

 

이 날 낙선재는 겨울대비 창호붙이기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빈 문살마다 하얗게 새 창호지가 덮였다.

붉은 옷을 차려입은 아저씨들은 아이들을 초청해 함께 창호를 붙여나갔다. 붓질 한 번에 흡족해 하는 아이들.

그렇게 역사 위로 계절은 해마다 새 창호지를 붙여나간다.

 

고요한 낙선재에 웃음이 한소쿠리 쏟아졌다.

 

 

 

 

 

 

 

 

 

쓸쓸한 가을의 끝, 겨울의 초입을 고스란히 맞아들인 뒷마당.

이곳에서도 슬픈 눈이 보이는 것만 같다. 하염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눈. 먼 역사의 슬픈 눈.

아름다움과 아픔이 함께 공존하는 곳. 낙선재.

마음으로 매만지고 마음으로 거닐어본 마루들이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땅에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집에서 마지막 몸을 누이고 싶은 건 왕족이나 범인이나 같은 것인가 보다.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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