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도착

커피우유- 2010. 12. 17. 08:30

<그녀의 첫 번째 걷기여행>에서 추천해 준 도서였다.  숀탠의 <도착>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울음을 운다. 분명 슬픈 이야기임에 분명해.. 하는 슬픈 예감.

 

 

 -숀 탠 그림

한 사람 한 사람의 여권 사진들을 그려놓은 맨 첫장.

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불편했다. 그 안에 담긴 긴 긴 사연들. 그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듯한 표정들이 아팠다. 국적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숱한 사람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이방인, 이민자라는 것이었다. 그리운 가족, 그리운 나라가 있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민자들의 사연을 담아낸 그림들 너머 마치 인생을 보는 것 같다.

얼굴이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이 그림으로 배운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작별인사를 하고 배에 올라 먼 길을 떠난다.

배에 오른 그가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소박한 식사를 하고 있다. 그가 물끄러미 창 밖을 내다본다. 그림 속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뒷걸음질치다보면 그 옆에, 그 옆에도 같은 모습의 승객들이 있다. 그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 배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사연들을 가지고 타고 있는 거구나.

 

하루 이틀 사흘...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며칠을 배에 머물며 항해를 했을까. 하늘이 맑았다가 흐려지고 밝았다 어두워지고 비가내리고 개고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간다.

 

항구에 도착한 남자는 어렵게 어렵게 새 땅에 정착을 시도한다. 말이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땅. 여러 사람에게 물어 방을 하나 구하고 먼저 가족사진부터 벽에 건다. 그리고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작은 방 창문 속으로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남자. 그림이 커지면서 그 옆에 그 옆에도 비슷한 사연들을 가진 이민자들의 방이 이어져있다.

어떻게 그림만으로 이렇게 많은 얘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것도 가슴저리는 이야기들을.

 

그가 도착한 곳은 언어도 문자도 사용하는 도구나 식기도 보이는 풍경도 모두가 전혀 새로운 신세계의 것들이다. 어쩌면 이민자들의 눈에 낯선 나라 낯선 문화가 이렇게도 보여질 수 있겠구나 짐작만 해 본다. 그는 그곳에서 동질감이 느껴지는 많은 이민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듣는다. 하나같이 눈물겨운 사연을 가지고 먼 이곳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낯설고 외로워도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그리운 가족, 고향, 꿈은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을 뿐이다. 젊은 날 기억 속에. 그래도 그들이 있어 낯선 생활 속에서 잠깐씩 웃을 수 있다.

 

 

 

다행히 남자는 신세계에 잘 정착했다. 뒤늦게 들어온 아내와 딸을 맞아 행복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책은 끝난다. 그의 어린 딸은 그보다 훨씬 더 낯선 땅에 잘 적응한다.

 

월 E 의 작가이기도 한 숀탠의 환상적인 신세계 그림은 무척 기이하고 낯선 것이지만 자꾸 들여다보면 이민자들이 느끼는 이질감, 소외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글자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림 속 등장인물들과 눈이 마주치면 그 눈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도 아픈 것이어서 심장이 가만히 떨려온다.

 

오늘도 길 떠난 누군가를, 낯선 땅으로 간 누군가가 무사히 도착해주기를 가족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을까. 국적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꾸는 꿈은 같다. 더 행복한 삶-

 

 

나를 울린 그림, 그림이 자꾸 말을 건넨다.

<저는 더 행복한 삶으로 먼 여행을 떠나는 중이예요. 잘 도착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