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그 누구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인생, 아름다운 날들

커피우유- 2011. 1. 5. 10:35

어떻게 이 책을 전하면 좋을까.

분명 우리의 삶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닌데, 장 자끄 상빼는 그 삶들을 하나로 묶어 두고 '아름다운 날들'이라 명명한다.

Beau Temps ! 그의 그림들을 들여다보며 "Beau Temps"이라고 인사를 건네야할 것만 같다.

 

장 자끄 상빼. 그의 그림은 처음 들여다보면 이쁘다 생각하게 되고 두 번 들여다보면 그래 그렇지.. 수긍하게 되고 책을 덮고 세 번 네 번 그림을 떠올리며 음미하다보면 가슴이 가만히 젖어든다. 그는 그만큼 사람을, 삶을, 사랑한다. 팔짱을 낀 채로 거부하지 않고 도리어 토닥이며 감싸안는 사람이다. 나와 다르다고 빈정거리지 않고 제각각인 사람들의 인생을 가만히 따뜻한 시선으로 추적할 뿐이다. 그저 그뿐이다. 그의 그림은 판단을 원하지 않는다. <다른 인생을 판단하지 마시오>그림으로 경고하는 것이다. 인생은 그저 제각각인 채로 흐르다가 끝나는 것이니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찡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언제부턴가 그의 그림보다 그의 사진 들여다보는 일이 더 즐거워졌다. 편안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장 자끄 상빼 그의 모습이 그림보다 더 달콤하고 편안한 인생을 보여준다. 인생을 향유하는 자의 미소인 것만 같다.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그림 속에 담아내는지가 엿보인다.

 

 

 

장 자끄 상빼의 화보집 <아름다운 날들>에서 전체 속의 개인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미약하고 작은 존재이지만 사실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언제나 '나' 중심으로 흘러가는 법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을 사랑하는 그들이 밉지가 않다. 귀엽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장 자끄 상빼의 눈으로 한 번 들여다보자.

 

 

 

어느 직장. 무수한 이들 속의 한 명인 그가 즐겁게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다. 그는 지금 희망에 부풀어 있다.

 

<할머니, 무화과나무 아래 묻어 둔 루이 금화를 꺼내세요. 왜 그러세요, 할머니. 거기 돈 있는 거 다 알고 있는데 ! 18루이 있을 거예요. 그걸 가지고 은행에 가서 르뢰 씨한테 엔화를 사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내일 엔화를 다시 달러로 바꾸고 다음날 루이 금화를 다시 사들이세요. 그러면 21루이가 될 거예요. 르뢰씨가 깜짝 놀랄 겁니다. 그 중에서 1루이를 르뢰 씨 딸인 프랑신에게 주고 내가 늘 생각하고 있다고 전해 주세요. 르뢰 씨가 은퇴하면 그 자리에 가고 싶어요. 파리는 공기 오염이 너무 심하고 날씨도 아주 나빠요>

르뢰 씨, 프랑신, 할머니의 의중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는 지금 너무 흥분해 있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때로 우리는 그렇게 나만의 꿈을 꾼다.

 

 

 

한 할머니가 커다란 교회를 찾았다. 그리고 기쁜 표정으로 외친다. <제 자전거 찾았어요>

희열의 순간, 기쁨을 할머니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작은 자전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저 얼굴 표정. 사랑스러운 이 그림을 보면서. 진정으로 Beau Temps ! 이라고 나도 할머니께 화답하고 싶었다. 내 지나온 날들에도 저런 날이 있었다. 기쁨에 겨워 고맙다고 소리치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어느 작은 마을. 드문 드문 쇠락한 폐가들도 보이고 주민들 대부분이 노년층인 마을이다. 그래도 무너지고 있다고 쇠락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말자. 그들은 여전히 밭을 일구고 닭을 키우고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갈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다. 그 결과 한 번쯤 들르고 싶어지는 마을이지 않나. 저기 저 까페에서, 저 마을에서 느슨한 시간 나도 같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쇠락해 가는 집 뒤 저 무성히 커가는 나무처럼 그곳에서의 하루는 어디보다 따뜻한, 햇볕 풍성한 날일 것 같다.

 

 

 

 

마치 달라진 그림찾기 놀이를 하듯 들여다보게 하는 그림이었다. 젊은 날의 날렵한 몸매는 약간 푸짐해지고, 아끼던 찻잔과 찻주전자는 이가 깨졌다. 사진 속 그녀는 젊은 날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멋진 청년으로 자라기를 기대하며 뜨개질 중이었다.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어린 시절 그 아이가 얼마나 빛나는 아이었나를 회상하며 여전히 뜨개질 중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림처럼 지나갈 것이다. 젊은 날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다가 무르익은 나이가 되면 젊은 날이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회상하며 추억이 아름답게 포장된다.

찻잔이 조금 깨졌어도. 그래도 제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걸.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자라난 아들도 고맙다.

그림 안에서 쇠함과 성장이 공존한다. 그러기에 Beau Temps! 아름답다 말할 수 있다.

 

 

인파로 가득 찬 해변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들의 눈에는 사랑하는 사람만 보이는 법이다. 그의 몸만 희다. 그녀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사실적으로 그가 오늘 처음 해변에 나타난 것인지도.

 

 

 

<아름다운 날들> 화보집을 넘기며 때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지만 그 오만함이 또한 그들의 연약함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그저 사랑스런 눈으로만 보게 된다. 어쩌면 거대한 크루즈 배 위에 올라앉아 "배를 탈 때면 항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몸을 아주 조그맣게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어느 할머니의 모습처럼 포부는 크되 우리는 그저 작은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 마음은 진정 크고 위대하지 않나. 때로 불만스럽고 뜻 대로 되지 않는 인생길이겠지만 커다란 세계 속에서 나는 그저 작고 미약한 존재일 뿐이겠지만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전체가 되는 감동을 맛본다.

 

 

 

해가 떠오른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들, 아직 비어있는 화폭 위로 담기만 하면 된다.

선두에 선 이가 외친다. <자, 이제 멋지게 휘둘러 봅시다!>

 

그러니 이제 자연이 차려놓은 멋진 풍경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꿈꾸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우리 모두는 Beau Temps! 아름다운 나날들을 살고 있다. 그러나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화폭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남은 건 내 몫이다. 얼마나 부지런히 겸손히 내 화폭을 채우며 잠시 떠 있는 해를 담아내고 향유할 것인가.

그 누구도 값어치를 매기지 못할 인생. 부디 주어진 <아름다운 날들>을 향유하는 날들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