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일요화가, 앙리 루소

커피우유- 2011. 1. 7. 11:02

앙리 루소의 그림을 좋아한 지는 꽤 오래전부터다. 학교의 낡은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화집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만났던 것 같다. 글이나 책과 마찬가지로 그림도 그 화가에 대해 잘 알기 이전에 그림만으로도 첫눈에 끌리는 법이다. 내게 앙리 루소의 그림이 그랬다. 작은 화집을 하나 사놓고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며 즐거워했었다.

 

그 <앙리 루소>를 다시 만났다. 이 책은 코르넬리아 슈타베노프의 그림 해설과 앙리 루소의 일대기가 일화와 함께 소개된 책이다. 세관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그가 처음 앵데팡당전에 전시한 '카니발저녁'으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일련의 그림들을 주제별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처음 전시된 '카니발저녁'이 혹평을 들었다는 사실도 이후 기욤 아폴리네에르, 피카소 등과 어울렸다는 사실도 내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들이 그의 그림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그의 그림이 좋은 것이다. 이유없는 끌림이다.

 

오히려 나는 그의 실패들이 좋았다. 그 이전부터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가 처음 공모전에 그림을 제출한 나이는 42세였다. '카니발저녁'이라는 작품으로 웃음거리가 되며 혹평을 들었던 앵데팡당전이다. 게다가 이 전시는 15프랑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전시였다. 이후 꽤 많은 비평가와 화가들이 그의 그림을 호평했지만 그의 시작은 그랬다. 게다가 공모전에도 번번이 낙선하는 화가였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그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를 뿌리채 흔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끝까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작업실에 있는 루소(1908년) 사진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루소가 생계를 위해 죽기 얼마 전까지도 바이올린 교습을 했다고 전한다. 바이올린을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바이올린을 켠 화가. 그러므로 그는 사랑받아 마땅한 화가다. 그토록 화가로 살기를 갈망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앙리 루소의 편에서 그를 예찬하며 쓴 글이 아니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비난도 찬사도 보내지 않으면서 그저 그를 설명하려는 책이다. 그러다보니 읽으면서 앙리루소를 아끼는 나로서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읽으면서 내 안의 앙리루소는 점점 더 빛을 더해갔다.

주어진 재능이 세상을 놀라게 할만큼 탁월한 것도 아니었고, 자유롭게 그림을 배우지도 그릴 수도 없는 환경에서, 환경과 상관없이 의연하게 꿋꿋하게 그의 길을 걸은 앙리루소니까.

그는 세관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상관의 허락하에 여가 시간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앙리루소를 아낀 작가 로슈 그레는 그런 그를 '일요화가'라고 불렀다.

<앙리 루소는 가난에 대한 원망없이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요일을 기다렸다. 일하는 주중의 휴식시간에는 시외곽에서 날아오르는 새와 피어나는 꽃, 지나가는 마차, 집으로 돌아가는 소를 바라보았다. 황혼녁에는 모든 것이 한층 부드러운 빛을 띠었다. 해가 넘어가고 빛이 사그라질수록 색은 한층 충만하고 풍부해지는 것이다. 한 주가 지나고 밤이 되어 만월이 지상에 은빛 세례를 내리면 마주 앉은 이의 얼굴빛도 그림자 진 곳 하나 없이 한가지 빛을 띤다. 루소는 이 모든 것을 보았고 사랑했으며, 그리고 영광스러운 일요일에 이를 그렸다>

 

숲 산책 The Walk in the Forest, 1886년경, 앙리 루소

 

 

그의 정글그림은 세련된 기교따위는 없이 원시적이고, 초상화들은 유치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순수하다. 심지어 그의 그림 속 누드조차 선정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로서는 나무, 꽃을 그리듯이 그저 몸을 그렸을 뿐이다. 인물화는 마치 증명사진 찍듯이 인물들이 모두 정면을 향한다. 무척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왠지 자꾸 마음이 가는 그림들이다. 그의 풍경화들은 그의 여가시간, 그의 산책길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적하고 왠지 정적이 감도는 고독한 분위기의 풍경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들은 숲을 그린 그림들인데 그는 나뭇잎 하나 하나, 나뭇가지 하나 하나를 꼼꼼하게 빼곡하게 그려넣는다. 들여다보면 어느 새 그 숲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게 만드는 신비로운 그림들이다.

 

아이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아이같은 마음으로 담아낸 화가. 내게 그는 그런 화가다.

 

 

 

자연을 관찰해 그 관찰한 것을 그리는 일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야외에 나가 태양과 초목과 꽃피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 정말이지 저 모든 것은 내 것이야!'라고 혼잣말을 하게 됩니다

-1910년. 아르센 알렉상드르와의 인터뷰 중에서. 앙리 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