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영화이야기

작고 조용한 시간,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커피우유- 2010. 10. 5. 11:36

 

언제나 그렇듯이 지브리의 영화들은 무척 설레게 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동화같은 이야기로 빠져들게 할 것인가.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순간. 지브리의 귀여운 토토로 캐릭터가 화면 가득 들이차는 그 순간.

드디어 아름다운 입체동화 속으로 걸어들어갈 시간이다.

 

시작이 맘에 들었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 위로 아름다운 정원과 집이 보이고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아리에티가 풀숲 위로 달려간다. 그림이 아름다운 동화다.

 

 

 

월계수 잎 한 장으로 1년을 먹을 수 있는 소인 아리에티의 가족들. 14살 아리에티는 오래된 교외의 어느 주택 마루밑에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티타임과 이쁜 주방용품을 좋아하는 엄마와 과묵한 아빠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인간들의 세계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빌려쓰는 것. 단 들켜서는 안 된다.

 

가족 중에서 아리에티의 엄마. 참 재미있는 캐릭터다.

여자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각설탕이 있으면 차를 마실 때 맛이 있다며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든지 아름답게 꾸며진 지금의 이 집에서 이사가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이라든지 쇼우가 인형의 집 주방을 통째로 아리에티의 집에 넣어줬을 때 꿈꾸던 주방이라며 너무나 좋아한다든지 하는 모습들...

 

생존보다도 한 잔의 티타임이 더 소중하고, 예쁜 도자기 찻주전자를 포기할 수 없는 모습. 현재라는 시간과 열심히 꾸미고 가꾼 공간에 대한 애착, 소유한 물건들에 대한 집착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 모습에 익숙한 아리에티의 아빠. 무언의 묵인을 해 주는 모습이 듬직하다.

 

 

하루 하루 작지만 조용한 행복이 감돌던 아리에티의 집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 오래된 주택에 쇼우가 나타나고부터다.

스스로의 생명을 확신할 수 없는 쇼우. 그건 아리에티도 마찬가지다.

연약하고 작은 존재, 힘이 없는 존재라는 하나의 공감대 안에서 아리에티와 쇼우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본다.

세상에 이들처럼 소통이 쉽다면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수월해질 것 같기도 하다.

한 마디 말로도 마음이 열리는 두 사람.

 

 

 

이 영화는 편안하다.

조용히 속삭이며 자꾸 작은 것, 더 작은 것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인형의 집이 그렇고, 작지만 없는 것이 없이 빼곡히 들이찬 아리에티의 집이 그렇다. 그리고 그 작은 것의 중심에는 작지만 강하고 아름다운 아리에티가 있다. 큰 것, 더 크고 화려한 것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작은 것이 주는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때때로 우리에게 삶의 기쁨을 주는 것도 작은 것들이 아니었나. 때때로 작은 말 한마디에 살아나갈 힘을 얻기도 하지 않았나. 작은 것이 힘있게 빛날 때 가슴 위로 파동이 번진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채로 헤어지는 아리에티와 쇼우처럼 우리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지만 가슴에 남는 따뜻한 존재 하나 그 기억이 비늘처럼 반짝거리는 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기억 속 어느 페이지에서 아주 작고 조용한 사랑 하나가 살았었다고.

작지만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었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고. 내가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고.

 

작고 조용한 시간 속 <마루 밑 아리에티>

기억을 더듬어 기억 속 마루 밑에서 아리에티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리에티, 그녀처럼 가볍게 가볍게 나팔꽃 덩굴을 타고 올라가 높은 지붕 위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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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루밑 아리에티OST- The Neglected Garden, Cécile Cor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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