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영화이야기

그 남자가 아내에게

커피우유- 2010. 11. 29. 14:16


사쿠라가 불러주는 노래 夢の中へ(꿈 속으로)

 

 

영화가 하는 말과 책이 하는 말이 다른 것 같다.

영화는 말줄임이 많아서 그들이 하는 말 너머까지 깊이 들여다봐야한다. 영화 속에 등장한 소품 하나, 영화 배경이 되는 장소까지 영화를 말한다. 그리고 대사가 아닌, 배경으로 소품으로, 하는 이야기까지를 누군가 들어주고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함축과 은유, 상징으로 소통하는 세계. 시같다. 영화감독들은 필름으로 시를 쓰고, 툭 관객 앞에 던져놓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시를 읽고 난 후유증처럼 잔상이 남는다. 그 잔상은 대개 머릿속에서 거듭 반복되는데 그 반복되는 장면 때문에 그 영화를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프라하의 봄'에서 춤을 추며 낡은 호텔방으로 들어가는 테레사의 미소가 그렇고, 자꾸 흙먼지 이는 국도변에 서 있는 '밀애'의 미흔이 그렇다.

생각해 보면 사람에 대한 기억도 그런 것 같다. 어느 한 장면이 자꾸만 반복되어 기억 속에서 떠오른다.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을 봤다. '그 남자가 아내에게.'

아주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다소 만화같은 설정이 포함되었으므로 흥미롭다고 표현하지만 그런 요소만 빼면 이 영화 역시 어느 가정집에서 찍은 듯한 사실적인 배경과 사연을 가진 영화다.

 

영화의 시작. 그 남자와 아내가 여행을 떠났다.

<먼저 말해 두지만 이번 여행에선 싸우지 않기다>

많은 이들이 이런 마음으로 결혼이라는 여행을 시작하지 않을까. 그러나 길어진 여행은 서로의 간격만 넓히고 서로의 차이점만 거듭 확인시켜준다. 제목처럼 그 남자는 아내에게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말들을 하고,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행동을 취한다. 밤. 별 좀 보라고 아내가 부르러 가면 남편은 침대에 모로 누워 귀찮은 듯 밀쳐낼 뿐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밉지 않고, 귀엽다. 아내가 옆에 있을 동안은.

 

가끔은 혼자가 되는 것도 좋더라구.

평소 당신한테 얼마나 신경쓰며 살았는지 잘 알게 됐거든.

혼자 사는 것도 참 멋지네.

먹고 싶은 것만 먹어도 잔소리 들을 일 없고

맘대로 트림하거나 방귀도 끼고

문 열어놓고 볼일 봐도 되잖아.

 

그래? 그럼 이제 혼자서 살 수 있지?

 

물론. 이라고 남자는 호기를 부리지만 잠시 멈칫. 남편은 이 상황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내의 표정이 한없이 부드럽지만 슬퍼보인다.

 

끝났잖아. 우리

"사요나라"라고 말하고 떠나려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가 열심히 사진을 찍는 동안 그녀의 눈빛이 젖어든다.

 

 

아내가 떠나고 없는 집. 암실에서 사진을 뽑으며 여행지에서의 그녀의 귀엽고 이쁘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여행을 가서까지도 함께 해주지 않았던 자신이 보이고. 그 남자 눈물이 난다.

조잘조잘 작은 새처럼 그 옆에 있어 주었던 그녀가 없. 다.

 

-슌짱. 쓘짱은 담배 피우니까 잘 먹어야 돼.

-슌짱. 토마토가 몸에 좋대.

-쓘짱. 별 좀 봐요.

그리고 그녀가 부르던 노래...

-찾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찾기 힘든 건가요

 가방 속도 책상 속도 찾아봤지만 발견되지 않는데

 아직도 찾아볼 생각인가요

 그보단 저와 춤추지 않으실래요

 꿈 속으로 꿈 속으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지 않나요

 

 

 

 

결혼 10년. 그 남자가 꿈꾸는 건 혼자의 시간. 아내가 꿈꾸는 건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둘의 마음이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꿈꾸던 혼자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남자가 그리운 건 아내가 함께 있던 시간 뿐이다.

 

 

나는 행복했어.

당신이 있는 것만으로도.

싸우는 것도, 잔소리하는 것도 행복했어.

왜 좀 더 당신에게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을까

 

 

나 정말 몰랐어

당신이 나를 이렇게나 좋아했었는지

살아있는 동안에 말해주지 않았어.

 

 

 

바다가 보이고 하얀 셔츠를 입은 그녀가 웃으며 뒤돌아서는 장면이 잔상으로 남아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반복되는 영화.

소중한 걸 몰랐다. 그립다. 그래도 또 살아간다. 이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

삶이 한 없이 지루해지고 권태로워진 <그 남자>들에게.

그리고 함께를 꿈꾸다 지치고 외로워진 <아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그 남자가 아내에게>

 

먼저 말해 두지만 이번 여행에선 싸우지 않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