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커피우유- 2010. 11. 3. 15:24

가을이 가을이 힘들게 지나고 있다. 생각해본다. 내가 예전에도 가을이면 이리 힘들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는지 아닌지. 도무지.

 

그 힘든 가을에 아픈 책을 만났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사라예보 여행을 다녀온 그녀가 가슴에 품고 울었을 것 같은 책, 그녀의 사라예보 여행기 속에 등장하던 책.

 

 

                                                                         사진. 나무님 블로그- '해 저무는 사라예보 언덕에서' 가져온 것.

                                                                                                        http://blog.daum.net/sorokdo/6045925

 

 

피투성이가 된 도시 사라예보에서 폭격이 있었던 자리, 움푹 팬 광장의 중앙에서 오후 4시면 첼로를 연주하는 이가 있다. 그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한다. 22일 동안. 22명의 죽은 이를 위해. 한 사람에게 하루씩.

그들은 그저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을 뿐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책을 계속 읽어가는 일이 참 힘겨웠다. 산을 오래 오르다가 팍팍해진 무릎을 느끼며 느려지듯이 자꾸만 책을 덮게 되고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중간쯤 가서는 나도 모르게 그만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가슴이 먼저 울음을 울었다. 잘 모르지만 잘 모르지만 가보지 못한 땅의 이야기지만 사람은 사람이니까 사람의 슬픔을, 그 깊이를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나.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눈 앞에서 아는 이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상황을, 1cm씩 기어서 살아나오려는 총상 입은 남자를, 기어이 다시 총을 쏘아 죽여버리는 상황을, 모든 것이 눈 앞에서 벌어졌다는데 내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떤 음악을 듣든지 슬픈 음악이 되었다.  마치 모든 음악들이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되는 것 같았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그는 무슨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아다지오'를 연주했을까. 슬프고도 비장하고 아름답고도 비릿한 그 곡.

 

그가 '아다지오'를 연주하는 동안 어떤 이는 물통을 지고 가족들의 목숨이 달린 식수를 구하기 위해 다리를 건넌다. 어떤 이는 유통기한은 지났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약들을 다른 환자에게 건네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교차로를 건넌다. 전쟁 중에도살아남은 자들의 생은 그렇게 계속 이어져야했다. 고작 250ml의 물로 면도와 세수를 끝내야하고 전기가 나간 어두운 욕실에서 촛불에 의지해 면도를 끝내고 더러운 수건으로 닦으면서 그렇게-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왜 전쟁이 일어나야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인가. 살지만 마치 죽음을 살고 있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그들은 지쳐갔다.

 

그러나 그 삶을 지탱하는 것은 희망이었다. 

 

<여기가 그의 집이고, 여기가 그가 있고 싶은 도시다. 그는 남은 인생을 점령하에 살고 싶진 않지만, 언덕 위의 저들에게 도시를 넘겨준다는 것은 그가 영원히 집 없이 살아야한다는 뜻일 터이다. 그가 여기 있는 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가 한때 사랑했고 다시 사랑할 터인 세상의 흔적을 외면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총을 든 자들에게서 벗어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이 도시의 거리들을 마음껏 거닐고, 식당에 앉아서 한끼 식사를 하고, 상점의 진열창들을 맘껏 구경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그 역시 '아다지오'로 도시가 재건되기를 소망했다. 폭격 맞은 광장은 움푹 패인 상태이고 도시는 허물어졌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의 사라예보는 얼마든지 재건될 수 있는 것이었다.

 

<첼리스트 위에 선 건물이 저절로 회복된다. 총알과 유산탄 자국들은 회반죽과 페인트로 가려지고, 유리가 다시 모이며 창들이 투명해지더니 햇빛이 반사되자 반짝인다. 도로에 깔린 판석들도 저절로 바르게 정돈된다.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키가 더 커지고, 얼굴에도 살이 붙고 화색이 돈다. 해진 옷들은 잃어버린 실오라기를 되찾아 화사해지고 스스로 주름을 편다.>

 

<케난은 사방팔방에서 그의 도시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첼리스트, 애로, 케난, 드라간 네 사람의 눈을 통해 전쟁이 눈에 보이는 것들의 가치를 어떻게 바꾸는 지를 보여주는 책.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극한의 현실 앞에서 평범하게 누리던 모든 것이 축복의 순간으로 기억되고, 묻혀있던 유년의 기억들이 따뜻하게 기억 속에 떠오른다. 허물어진 도시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따뜻한 기억을 간직한 자들...살아남은 자들.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다가 삶을 놓쳤다는 것을>자각하고 에미나대신 유통기한 지난 약을 필요한 이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목숨걸고 교차로를 지나가는 드라간,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를 광장에서 '아다지오'로 그들의 영혼을 만지는 첼리스트, 목숨을 걸고 첼리스트를 저격수들로부터 지켜내는 애로, 자기 가족과 이웃집 부인의 식수를 구하러 사흘에 한 번씩 목숨을 걸고 도로를 가로질러야하는 케난.

그들은 모두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폐허의 도시에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물어온다.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광장에서 '아다지오'를 연주할 용기가 있는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식수를 길어나르며, 누군가에게 약을 전해주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지, 나보다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지, 계속 계속 폐허가 되어가는 도시 안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

재생되고 복원된 '아다지오'처럼 파괴된 영혼, 파괴된 도시는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두께만큼 묵직하게 마음에 얹히는 책.

 

 

 

74

 배경음악. Albinoni: Adagio

 

 

 2010년 11월 1주 파트너view 베스트에 선정되었어요.

10분의 좋은 북 리뷰어들과 함께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