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해변, 승용차에 잔뜩 실린 짐들을 숙소로 옮기는 단란한 가족이 보이고 그 뒷편으로 해변에 선 한 남자가 보인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빈 해변에 홀로 서서 쓸쓸해보이는 그는 바다를 보며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리고 그가 밝히는 포부: 사치와 평온과 쾌락
사치는 무엇이고 평온, 또 쾌락은 무엇일까.
장 자끄 상빼 그림 <사치와 평온과 쾌락> 중에서
창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풍성한 햇볕에 때로는 멋진 인사를 건네며 맞아들인다. 쏟아지는 이 햇볕도 사치이다.
비 내리는 아침, 가운을 걸친 채 차를 마시며 출근하는 남편을 창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것도 사치이다.
그네에 앉아 붉게 떨어지는 해와 주변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는 노을을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사치이다.
비 내리는 날 차와 책들이 편안하게 놓인 소파에서 느긋하게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사치이다.
이 모든 인생의 순간들이 모두 사치일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평온해지지 않을까.
--장 자끄 상빼 그림 <사치와 평온과 쾌락> 중에서.
쾌락은 무엇일까.
남편이 첼로를, 아내가 바이올린을 들고 걸어가다가 연주할 때는 남편이 바이올린을, 아내가 첼로를 연주하는 것.^__^
체스를 두기 위해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친구를 바라보며 체스에 진 그가 축 쳐져서 가는 모습 상상해 보는 것.
엄청나게 요염한 여자 S가 도취에 빠져 그녀를 둘러싼 수 많은 남자 T, J, PN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불러댔다고 일기장에 쓰는 일.
일과가 끝나고 맥이 빠지지만 길어진 그림자가 아직 병중에 있는 부장의 사무실을 향할 때 기운을 되찾는 일.
그리고 세상에 나와 첫걸음을 떼는 일.
TV에 심취한 엄마, 아빠 뒤에서 아기가 걷고 있다. "엄마, 아빠, 나 걸어요."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의 날들을 살고 있었구나 하는 것.
내가 나를 피사체로 보지 못하고 내가 나를 찍을 수 없어서 몰랐을 뿐이다.
순간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을 놓치지 말라고 그림 한 장 한 장으로 끈질기게 설득해주는 장 자끄 상빼, 그가 고맙다.
- 장 자끄 상빼 그림 <사치와 평온과 쾌락> 중에서.
아이들에게는 사치도, 평온도 쾌락도 참 쉬워 보인다.
저 느긋하게 즐기는 모습이라니...
<지금 당장 제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없다면 우선은 50%만 들어 주시고, 나머지는 올해 안으로 들어주소서>
진지하게 무릎 꿇고 드리는 천진난만한 한 남자의 기도가 꼭 이루어지길-
역설이 즐거운 책. <사치와 평온과 쾌락>
완벽한 사치만 즐거운 건 아니다.
장 자끄 상빼식 사치와 평온과 쾌락으로 포부를 만족시킬 새로운 해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 추운 겨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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