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우리는 사랑일까, 사랑을 궁리하는 책

커피우유- 2011. 1. 17. 10:50

 

 

 

 

누군가와 100년, 200년을 살아도 "그냥 조금 알 뿐이야."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성격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떤 사람에 대한 인상은 만난지 2분 안에 형성된단다. 이 사람 맘에 들어/안 들어.

 

사랑에 시무룩하던 앨리스. 그녀는 사랑에 꽤 냉소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실용적인 사랑보다는 시나 영화에서 보이는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영혼의 결합같은 관계를 꿈꿨다. 휴일 저녁 홀로 통조림토마토수프를 데워 먹으며 엔디워홀이 캠벨 통조림을 예술로 격상시킨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언젠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날이 오기를 갈망했다. 누군가 그녀의 작은 부분들을 제대로 봐주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사소한 인생이 특별한 삶이 되기를.

그런 그녀에게 나타난 남자 에릭. 에릭은 '불현듯 솟구친 행복감'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일에서 성공했고

-재미있고

-자신을 잘 알고 솔직하고

-상냥하고 관능적이고

-미남이고 현명한 사람.

 

앨리스에게 에릭은 그런 존재로 인식되었다. 에릭의 구두끈 매는 모습이 너무 멋져보여서 '이렇게 귀엽게 구두끈을 매는 사람을 찾아내다니 이게 꿈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앨리스는 빠르게 몰입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를 '사랑을 사랑하기'라고 명명했다.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 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열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대상보다는 그 대상으로 인해 생기는 감정의 기복을 더 즐긴다는 것이다. 그는 수학공식처럼 사랑을 기호화하고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를 특유의 논리로 집어낸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 이 책은 소설이면서 연애지침서다. 문학적이면서 또, 철학적인 접근으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을 해부하고 분석하고 도식화하는 책이다. 현미경으로 깨알같은 사랑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흔히 사랑을 하면서 느끼는 이질감, 괴리감.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얼버무리고 모호한 채로 지나쳤던 감정 간의 간격을 무척 설득력있는 논조로 분석해서 확인하게 해 준다.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가 된단다. 둘 사이에

<누가 노력하는가>에 따라 우위가 결정되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하나?>를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사랑을 받고 있는지, 이 사랑이 나를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사랑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단다. 한 사람을 알아가고 사랑하는데 있어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짚어준다.

 

이렇게 궁리해야하는 게 사랑인가. 하다보면 사랑에 대해 조금 씁쓸해진다. 이 책이 연애소설이면서, 사랑을 다루면서 로맨틱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분석하는 사랑이 어떻게 로맨틱할까. 그래도 한번쯤은 사랑을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복잡한 미로를 위에서 내려다보듯 '아. 저래서 길이 막혔구나' 발견해 보면서 그저 마음을 쏟아 사랑했는데 막다른 길이었다든지 하는 절망적인 상황은 막아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랑이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여자의 입장, 남자의 입장이 무척 공평하게 배분되어 양쪽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책이 될 것 같다.

 

 

사랑은 왜 졸업이 안 될까.

왜 매번 "그냥 조금 알 뿐이야." 혹은 "그를/그녀를 아직도 잘 모르겠어."로 결론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