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우주를 떠도는 별처럼 외로운 우리들의 이야기

커피우유- 2011. 2. 16. 09:44

애절한 혼잣말 놀이, 이메일 놀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에미. 그녀의 이름은 에마 로트너. 신발 37사이즈를 신는 서른 네 살의 여자. 베른하르트 로트러라는 이름의 남자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로트너의 두 아이 피오나, 요나스와 살고 있다.

 

레오. 그의 이름은 레오 라이케. 서른 여섯의 언어심리학 교수이고 마를레네라는 여자와 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았고, 혼자다.

 

첫시작은 그랬다. 잡지 구독취소 메일을 like.com으로 보내야하는데 leike.com으로 잘못 보낸 것. 숱하게 얽히고 얽히는 인터넷 세상 속에서 잘못 입력된 'e'라는 철자 하나로 에미와 레오는 만났다.

가볍게, 혹은 신랄하게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그들은 메일을 기다리고 메일에 대한 기대감에 빠져든다. 그것은 미지의 아직 열지 않은 메일에 대한 기대감이었고 미지의 에미와 레오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에미와 레오는 아직 읽지 않은 편지, 내게로만 배달된 편지 같은 것이었다.

나고 자라고 커가면서 내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더 이상 쉽지가 않다. 그 쉽지 않은 이야기를 에미와 레오. 두 사람은 이야기하고, 들어주게 된 것이다. 그들이 나눈 것은 정서적 공감이었다. 어쩌면 내가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눈 것이라해도 그리 이상할 것 없는 솔직한 이야기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완벽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사람, 완벽한 내 이상형이야. 나의 소울메이트야라는 말, 내뱉는 순간 더 이상 완벽한 이상형도 소울메이트도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어요. 그녀의 이미지는 너무 부드럽고 연약해서 나의 진짜 시선이 가 닿으면 당장 금이 가거나 깨져버릴 거예요.> 레오의 이 고백처럼 말이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새벽 세 시예요. 북풍이 부나요? 굿나잇."

"세 시 십칠 분이예요. 서풍이예요. 쌀쌀하고요. 굿나잇"

 

에미와 레오 그들에게는 하루의 시작과 하루의 끝을 함께 했던 이메일이었다. 만난 적 없지만 어쩐지 분명 첫눈에 반하고 말 것같은 사랑. 서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이제 이메일 밖으로 한 발 내딛기 직전 서늘한 북풍이 불어온다. 열린 창으로 북풍이 불어 들어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그녀에게 자상하게 북풍 피하는 법을 일러주던 레오를 보내야하는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추워요. 북풍이  불어오고 있어요. 이제 우리 어떡하죠?"

 

에미와 레오처럼 우린 어쩌면 허기져 있다. 나를 인정해 주고 옹호해주는 어떤 목소리, 소소한 안부를 물어주고 감정 변화를 알아채주는 따뜻한 마음, 나를 꾸미지 않아도 경탄스런 눈길로 바라봐주는 사랑스런 눈빛, 때로는 침실의 열린 창으로 불어닥치는 북풍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해주는 그런 사람, 나의 아침과 나의 밤을 굿모닝, 굿나잇으로 설레게 할 사람같은 것 말이다.

이메일이나 에미,레오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이메일, 채팅, 메신저, 블로그, 점점 더 소통의 창은 늘어가지만 점점 더 멀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 차갑고 손이 닿지 않는 이 거대한 컴퓨터 속에서 우주를 떠도는 별처럼 우리는 만나고 헤어진다.

작은 위로와 더 커다란 허기를 안겨줄 뿐이다. 에미, 그녀의 발치에 불던 북풍이 이젠 가슴 속에 들이치지 않을지 걱정이다.

 

 

 

 

우린 그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아요.

나이도 없고 얼굴도 없어요.

우리에겐 밤낮의 구별도 없어요.

우린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아요.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33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