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작은 벤치의 기적, 푸짐한 행복이 거기 앉아있다.

커피우유- 2011. 2. 23. 10:01

작은 벤치의 기적.. 행복한 책이다. 푸짐한 행복의 부피를 느껴보는 책.

제목에서부터 내 맘을 끌었던 건 두 단어다. '작은'과 '벤치'. 아. 그러고보니 기적도 믿는다. 그러니 '기적'도 빼놓으면 안 되겠다.

그렇게 '작은 벤치의 기적'은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

 

이 이야기는 작은 것, 소소한 것,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어떤 것이 삶에서 어떤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를 돌아보게 한다. 작은 것의 힘. 사소한 것의 힘. 여기에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우연들도 포함이 된다.

 

함부르크 시 공원 관리국장 지그마어 취른 씨가 잘 나오지 않는 볼펜 끝을 입김으로 불어가면서 서명한 끝에 이 작은 벤치는 만들어졌다. 1967년 5월 21일의 일이었다. 벤치는 알스터 호수의 서쪽 호숫가 산책로에 세워질 것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몇 십 년 시간이 흐른 2000년 즈음으로 넘어간다. 

 

취른씨에 의해 놓여진 알스터 호수의 작은 벤치 하나. 이 작은 벤치는 세계적인 모델이었던 올레안나가 모든 명성을 박차고 나가게 만들었고, 자신의 아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파비안에게 사랑했던 여자 비르기트와 16살 된 어린 파비안을 만나게 해주기도 한다. 알스터 호숫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리자는 호크너박사 덕분에 피부암을 조기발견했고, 서른 세 살의 문구점을 운영하던 솔로 슈테판은 이 벤치에서 멋진 애인-한때 톱모델이었던 올레안나-사비네 비르트를 만난다. 벤치에 새겨진 하트 속 MH+ AK 때문에 어린 안네는 마르크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고, 남편의 학대로 억눌려있던 호프만 할머니-하트 속 MH+ AK 의 주인-는 이 벤치에서 30년 만의 사랑 고백을 받았다.

 

기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상을 깨고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내게, 내 눈 앞에 일어난다면 그게 기적이다.

톱모델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모든 명성을 내 버릴 수 있을까. 품위있게 살아온 의사의 아내 호크너 부인이 어떻게 노숙자 보비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며 껴안을 수 있을까. 지적인 젊은 여성 욜란다가 이상한 편지만 보내는 호프만 할머니의 얘기에 눈물을 글썽이며 공감하게 되는 일은. 16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이 몇 시간만에 서로를 받아들이고 가족이 되는 일은. 정말이지 이 모든 일이 작은 벤치가 만들어낸 기적들이다.

때론 미소지으며, 때론 얘기에 빠져들며 가슴 가장자리가 가만히 젖어들어오는 기적들.

 

이야기 한 편, 두 편.. 읽어가다가 두 편 만에 가슴은 이미 무언가로 가득 찬다. 무엇일까. 이 노랗고 둥근 느낌, 빈 공간없이 들이차서는 쏴아 빠져나가는 공기 같은 것. 감동이란 이런 것이지. <작은 벤치의 기적>은 마치 내 마음에 누군가 붙여주는 반창고같다. 그저 반창고 하나 붙여주는 것만으로 울음을 그치는 아이처럼 게르노트 그릭슈, 그의 이야기에 그저 모든 나쁜 생각들이 얌전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냥-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알스터 호수를 중심으로 이 작은 벤치를 둘러싸고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다. 사비네 비르트, 파비안, 비르기트, 호크너 박사, 리자, 슈테판, 안네, 마르크, 욜란다, 호프만 여사, 아나톨, 보비, 모리츠, 호크너 부인..

생각해보니 모든 게 거저 된 것은 없다. 피부암을 조기 발견한 리자는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환자에게 다가가 병원에 가 볼 것을 권한 호크너 덕분이었고, 호크너 박사는 알스터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리츠를 즉각적으로 달려가 도와준 보비 덕분에 아들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같다. 살아가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인연이라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연도 운명이 되는 일들. 그런 작은 기적이 만들어가는 인생.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내가 한 선행 하나가 돌고 돌아 내게로 돌아오는 이 기막힌 인연의 고리를 이 책 속에서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거듭 확인한다. 내게 일어난 삶의 기적들도.

 

오늘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작은 벤치 세우는 일에 서명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작은 벤치에서 기적을 만날 것이다. 그런 벤치가 있는 곳이라면 분명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도 함께일 것이다. 아름다운 알스터 호숫가 그 작은 벤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