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연인, 슬픔의 메콩강에서 건지는 불멸성에 대하여

커피우유- 2011. 2. 18. 11:00

나는 항상 얼마나 슬펐던가.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쩌면 운명적으로 알아보았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 이 책. 이 슬픔. 명백하게 이 책의 주제는 '슬픔'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가슴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낮게 고여있는 슬픔에 대해서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말하고 싶어했다. 어떤 모습으로든 인생에 한 번은 터치고 나올 그 슬픔.

어린 날의 내 사랑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나는.. 나도.. 슬퍼서 사랑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랑도 슬픔이 없어야 할 수 있다. 슬픔에 잠겨 숨도 쉴 수 없는 사람은 사랑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힘 없고 어린 열 다섯의 소녀, 절망처럼 슬픔이 가득 들이찬 그 소녀가 사랑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슬픔으로 가득 들이찬 그곳에 사랑이 들어올 틈은 없었다.

불운한 결혼생활에 이어 닥친 불안정한 삶이 소녀의 어머니를 잠식해 들어갔다. 그녀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고, 어쩌면 심한 조울증을 앓았다. 열 다섯 소녀의 기억 속 어머니는 어느 날은 지나치게 활기찼다가 또 어느 날은 아무 것도 돌보지 못한 채 아이들도, 삶도 방치하는 어머니였다. 오로지 큰아들에게만 모든 기대를 걸고 감싸다가 큰아들을 덩치 크고 늙은 건달로 만들고 만 어머니. 소녀에 대해서는 잔혹했고, 냉정했고, 비정했다. 작은 아들, 소녀의 작은 오빠는 큰오빠의 횡포에 늘 짓눌려 사는 약한 존재였고, 소녀가 돌보고 싶은 존재, 사랑한 존재였지만 일찍 죽어버렸다. "안녕. 잘 자.", "고마워." 와 같은 기본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가족. 서로의 얼굴을 마주쳐도 외면해버리는 가족. 소녀가 기대고 쉴 가족은 애초에 없었다.

소녀는 다만 탈출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탈출구로 그를 만났다. 나룻배를 타고 메콩 강 지류를 통과하던 그 때, 안개와 열기의 희미한 빛 속에서, 강물의 레몬빛을 온몸으로 받은 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나룻배의 갑판 위에 홀로 서서 빠른 속도로 휩쑬려 가는 물살을 바라보던 그 때. 그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렇게 힘차게 흐르던 물처럼 그녀의 열 다섯 살 어느 날도 그와 함께 힘쓸려갔다.

 

어떤 것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모든 것이 강 속에 깃든 심오하고 현기증 나는 물살에 실려 갈 뿐이다. 모든 것은 강이 지닌 힘의 표면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안개와 열기에 휩싸인 채 아름답고 유유하고 야성적인 힘으로 흐르는 메콩강은 그와 소녀의 사랑을 닮았다. 대화도 기약도 없는 채로 그들은 휩쓸려 흘러갔다. 물살은 빨랐고 그들의 만남도 그랬다.

 

"서로 사랑을 하든 서로 사랑을 하지 않든, 항상 비참해. 이제 곧 밤이 올텐데, 밤이 오면 그런 감정은 사라질 거야"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녀가 일흔 한 살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연인>

작은 오빠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불멸성'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어렵다. 불멸성이란 영원해야하는 것이지만 불멸성도 유한성이 있으며 불멸성도 죽을 수 있으며 그런 사실이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이 부분을 읽다보니 어쩐지 또 슬퍼진다. 아름답고 영원한 불멸성을 잃으며 살아야하는 우리가 자각되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영원한 채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연약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던 작은 오빠의 죽음, 그리고 첫 아이의 죽음 그것은 그녀에게 더 이상 영원한 불멸성이란 없다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또한 뒤늦은 자각으로.

아름답고 영원한 불멸성을 우리는 잃고 나서야 자각한다는 것이다. 그가 불멸성이었다는 것을. 그가 아름다운 존재였다는 것을.

그러나 깨닫고 난 이후 그것은 이미 너무 멀리 있다.

소설 속 그녀의 연인 콜랑의 그 남자. 그도 그녀에겐 또 하나의 잃어버린 '불멸성'이었다. 이 불멸성 역시 너무 늦게 자각되었다는 것이 유감이지만.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콜랑의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모래 속에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제야,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퍼지는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작은 오빠가 죽은 후에야 그의 불멸을 기억해 냈듯이.

 

훗날, 소녀가 몇 번의 결혼과 몇 번의 이혼으로 아이들을 낳고 몇 권의 책을 펴냈을 즈음 콜랑의 남자가 부인과 파리로 왔다. 그 남자가 남긴 전화 속 이야기가 불멸성을 잃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 위로가 될까. 아직 죽지 않은 불멸성도 있다고.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숙제처럼.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 집어들게 된 소설이다. <연인>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영화 속 소녀가 프랑스로 떠나는 뱃전에서 쇼팽의 왈츠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 따위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그를 사랑했는지도.

다만. 그녀는 기막힌 슬픔의 메콩강을 건너고 있었으며 모든 것이 휩쓸려 가는 메콩강 속에서 불멸성을 건지고 싶었던 거라고. 그렇게 이 책을 덮는다.

 

소녀가, 콜랑의 그 남자가, 하찮게 취급받는 사랑이, 삶들이 아프고 슬프다. 내가 잃어가는 불멸성들도...

 

 

영화'연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