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커피박탈의 효과-일주일간 커피를 마실 수 없다면

커피우유- 2011. 3. 21. 10:22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16일 토요일, 정부는 서민예산삭감에 관한 대개혁안 법안 상정을 앞두고 있고, 야콥은 이탈리아어 보충 수업을 빼먹으며 야즈미나와의 데이트를 위해 베를린 전망탑 드라쿠스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로스팅 카페를 운영하는 브리오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침의 커피 의식을 치르는 중이었다. 에스프레소 기계의 전원을 켜고 예열이 되는 틈을 이용해 수도꼭지를 틀어 물통에 물을 채우고 뜨거운 수돗물로 찻잔을 데우고 분쇄기로 원두를 갈았다. 커피 알갱이는 0.2mm가 못 되는 굵기로 모래알보다 곱게. 그의 커피에 대한 철학은 확고한 것이었다. 한 잔에 정확하게 커피가루 7그램을 써야한다. 갓 간 걸로. 분쇄기는 원추형을 써야하고 물의 온도는 93도, 압력은 9기압, 추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초 이내로.

행복이 크레마로 정제된 완벽한 커피를 앞에 둔 브리오니의 아침 의식 시간. 그 때 전화가 걸려온다.

아들 야콥이 드라쿠스 커피점 독극물 사건으로 병원해 이송되었다는 전화였다.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여기 저기 드라쿠스 커피점에서 250명 이상이 커피를 마시고 중독중세를 보여 병원으로 실려간 사건이었다. 그들은 맥박수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경련을 일으키고, 땀을 쏟고, 신경과민과 패닉증세를 보였다. 심계항진증이라는 병명이 붙었다. 카페인을 다량 섭취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세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여기자 아가테와 소규모 로스팅 카페를 운영하는 브리오니. 그들이 이 커피 독극물 사건의 배후를 가리는 9일간의 행적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브리오니는 아들 야콥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음모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된다. 쫓기는 상황에서 배후를 쫓아야하는 긴박한 상황에 놓여버린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싸구려 커피를 캐러멜화해서 공급하는 대규모 커피회사 드라쿠스사, 비카사와 늘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들의 비리를 늘 고발해 왔던 것.

그러나 사건은 개인과 거대 커피회사의 것만은 아니었다. 드라쿠스사 뒤로 '시간늦추기협회'가, '시간늦추기협회' 뒤로 '산업협회'가, '산업협회'뒤로 서민예산삭감안 의결을 앞둔 정부가 있었다. 커피를 둘러싼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왜 정부의 개혁안을 소요없이 통과시키기 위해 그들은 커피를 사용했을까. 이 책 속에서 커피는 행복한 향기 그 이상의 기능을 얘기한다.

커피가 <인간의 정신에 가장 강력한 촉매제이자 가속장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계몽의 시작을 특징짓는 것은 하나의 냄새입니다. 바로 '커피향기'지요!"

그들은 이 가속과 변화와 급격한 발전이 있었던 커피향기를 사람들에게서 빼앗음으로써 그들의 의도대로 저항도, 시위도 없는 대개혁안 의결을 원했다. 과거부터 커피하우스에는 열렬한 웅변이 있고 열띤 토론이 있고 밤을 낮으로 만들었고, 밤마다 논쟁을 벌이고 회의를 열고 계획을 짜고 혁명까지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커피가 사람들을 자극하고 선동해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이 책은 묻는다. 그렇다면 카페인을 빼앗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카페인이 없으면 저항이 사라질까? 저항할 힘이 사라질까? 혁명을 일으킬 마음이 사라질까?

 

그들은 정치가들의 수사법에 의거해서 세금인상이라는 말 대신 개혁이니 현대화니 단일화, 혹은 '미미하게 인상된 공과금'이니 하는 말로 바꾼다. 고통을 주는 간섭은 장기간에 걸친 '습관조절'로 순화되고, 더 나쁜 노동조건은 새로 노동과정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만 지워진다. 국민들의 분노는 극복되는 방향으로 유도되고 불평과 정치에 등돌리기로 표출되었다.

저항은 좌절되었다. 일주일 넘게 커피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시위에 참여할 의지도 저항할 의지도 박탈당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대개혁안은 통과되었다.

 

게르하르트 J. 레켈의 장편소설 '커피향기'는 커피의 기원부터 최초의 커피하우스 풍경, 최고 품질의 커피이야기는 물론 커피 전파로 나타난 역사까지를 담아낸다. 여기자 아가테와 브리오니와 함께 쫓기며 검은 음모를 쫓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긴박하고 촘촘하게 잘 짜여진 이야기 너머로 맡을 수 있는 최고의 바리스타 브리오니가 만들어주는 진한 '커피향기'는 덤이다.

 

 


커피향기

저자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06-08-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대도시에서 벌어진 집단 커피독극물 중독사건! 커피를 둘러싼 음...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