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마녀배달부 키키'의 나라 크로아티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그녀가 빗자루를 타고 집집마다 붉은 지붕을 얹은 도시를 날아다니던 그곳. 두브로브니크. 참 아름답다고 느꼈었는데 이번에는 영화 속 풍경이 아닌 더 직접적인 여행기로 만나게 됐다. 여행 작가 김랑의 <크로아티아 블루>에서.
이 책, 허리 아랫부분이 안개에 휩싸인 '모토분'의 몽환적인 풍경이 있는 표지에서부터 블루는 출렁인다.
블루. 블루는 사랑의 색이다. 파란색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가 있다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란다. 블루는 동경, 이상, 꿈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어떤 하늘처럼, 어떤 바다처럼.
그러니 내 마음이 사랑을 잃고, 어떤 꿈도 이상도 잃은 채로 딱딱하게 경직되어간다면 이 책을 만나볼 일이다. 살며시 메마른 가슴에 실금이 가고 조금씩 그 빈틈으로 바다가 스며든다. 그 위로 아름다운 것들이 함께 떠밀려 온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의 걸음을 따라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다보면 이내 온몸에 푸른물이 들고만다. 그립던 어떤 하늘, 어떤 바다가 어느새 내 안에서 넘실대고 출렁인다.
그의 여행기는 무척 감성적이고 아름답다. 한 편의 동화같고 영화같은 서사들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로빈, 모토분, 풀라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이어지는 크로아티아 여행길 본문의 앞과 뒤에 그는 크로아티아 스케치Croatia Sketcn라는 형식으로 아름다운 사진들을 따로 빼두었다. 에피타이저와 디저트처럼 이 사진들은 각각 여행기의 앞쪽에 여섯 장, 여행기의 말미에 여섯 장이다.
크로아티아 여행이라는 대장정의 정찬을 앞에 두고 에피타이저로 이 사진들을 음미해보는 것이 좋다. 어쩌면 이 여섯 장의 사진만으로 이미 마음이 홀딱 블루에 젖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행기 말미에 올려진 나머지 크로아티아 스케치 여섯 장의 사진은 아쉬움을 달래주는 달콤한 여운이 감도는 디저트다. 최대한 천천히 넘기며 오래 여운을 즐기는 게 좋다.
글 사이사이 러브레터처럼, 짧은 엽서처럼 실린 11편의 크로아티아 다이어리Croatia Diary는 그가 주는 선물같은 메시지들이다.
건조한 일상 이따금 하늘도 보며 살라는, 새살 돋는 바다보며 살라는 아름다운 싯귀들에 마음이 녹는다.
섬
물새가 끌고 온 수평선을 바라보니
가슴을 잃은 사람들이,
혼자 서는 게 두려운 사람들이,
섬을 찾는 이유를 알겠다.
모진 땅에 살면서 긁힌 생채기는
새것으로 철렁 밀려드는 파도에 씻기고
저 수평선 너머에는 새살이 돋는다.
물새는 아직 못다 걷힌 잿빛 세월을 날고
나그네는 새로 시작할 시간을 닦는다.
-Croatia Diary 02
<그리워서 떠나는 게 여행이라지만, 떠나고 보면 그리운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여행길에서 그는 사람을 만나고 친구가 되는 인연을 만들고 차곡차곡 자신의 구겨진 마음들을 펴 가며 정리하는 시간을 만든다. 어쩌면 한 번 걷고 돌아서야하는 길처럼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인연은 때론 아쉽고 때론 그리움이지만 걷다 걷다보면 돌아볼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는 것이, 한번쯤 돌아볼 인연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 된다. 아쉬움이 남지 않는 인연이 없는 것처럼 아쉬움이 남지 않는 여행도 없을 테지만 <여행에서 많이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때로는 향기든, 기억이든, 마음이든, 무엇인가 남겨두는 편이 훨씬 좋을 때가 많다.>는 그의 말이 위로가 된다. 그렇지. 때로는 남겨두어야 두고두고 그리워할 수도 있을테지.
-'크로아티아 블루' 책 속 사진들.. 두브로브니크 & 스크라딘
크로아티아 블루
Danny Boy 아일랜드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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