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영화이야기

블랙스완, 아름답고 슬픈 완벽함에 대하여

커피우유- 2011. 4. 2. 09:49

음악이 흐른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음악이 고조되면서 어둠 속의 발레리나, 분주히 움직이는 발만 보여진다. 시작부터 강렬하게 마음을 붙잡는 음악과 아름다운 백조. 발레리나의 모습이다.

발레리나 니나가 꾼 꿈의 내용이었다. 

원치않는 임신으로 일찌기 발레리나의 꿈을 접어야했던 어머니의 철저한 관리 속에서 그녀는 오로지 발레만을 생각하며 발레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녀의 춤 위에 그녀의 어머니의 꿈까지 실려있는 셈이다. 발레리나로 성공하기까지 잠자리 곁을 지킬 정도로 그녀의 어머니는 철저하게 니나를 통제하고 어머니의 소녀로, 발레리나로서만 살게했다.

다소 기이해 보이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 장면은 '프라하의 봄'의 테레사와 어머니, '피아니스트' 속 에리카와 어머니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어머니는 딸을 억압하고 딸은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구도다.

 

그런 그녀가 '백조의 호수' 새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그녀는 전혀 새로운 갈등을 만난다.

그녀 안에 백조만 있다는 단장의 말에 그녀는 "Wanna be perfect 나는 완벽해지고 싶어요." 라고 절실하게 호소해보지만 그녀 안의 흑조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하는 완벽한 '백조의 호수'를 위해 오랫동안 수면 아래 묻히고 어머니에 의해 거세당했을 그녀 내면의 욕망, 성장하고 성숙했어야 할 니나를 그녀는 만나야했다. 성장하지 못한 채로 오르골과 인형들이 있는 방에서 예쁜 백조처럼 소녀로만 살아온 여린 니나. 발레단이 추구하는 새로운 백조-관능적이고 보다 현실적인-가 되어야만 그녀는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

최고가 되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망, 눈에 띄는 타고난 관능미로 그녀를 압박해오는 동료 릴리, 못다 이룬 꿈으로 늘 불안정해보이는 그녀의 어머니. 이 모든 게 그녀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중 어느 게 진짜 내 모습인지 점차 그녀의 불안한 흔들림이 가속화된다. 그녀, 완벽해질 수 있을까.

 

그러나 완벽하다는 것은 파괴적이기도 한 것을 영화는 베스를 통해 보여준다.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와 함께 무너져내린 베스. 최고인 것 같으면서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 완벽함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이다.

"완벽하지만 파괴적이기도 해."

단장의 이 말은 비단 베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완벽한 흑조를 위해 완벽한 백조는 죽어야한다. 완벽한 '백조의 호수'의 프리마돈나를 위해 '그 동안의 나'는 죽어야한다. 공존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완벽함이었다.

"Wanna be perfect."

피를 흘리며 공연의 엔딩을 준비하는 그녀의 날개짓은 그래서 슬프고 애처롭다. 그녀의 영혼은 그 '완벽함'을 위해 때로 살갗이 벗겨지고 자주피에 물들어 있다. 완벽함에 대한 욕망이 환상을 만들고 꿈이 그녀를 집어삼켜 잠식해 들어간다.

완벽함이 무엇인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생애 단 한 번뿐이라면 이 얼마나 애처로운 완벽함인가.

 

그녀의 날개짓에 그저 눈물이 난다. 편안하게만 듣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이렇게 비장한 것이었나 새롭게 듣게 된다. 백조만으로는 안되고 흑조도 요구하는 무대처럼 삶은, 예술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요구한다.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의식과 무의식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에 바치는 그녀의 완벽한 무대에 나도 갈채를 보낸다.

 

영화 '블랙 스완' 무섭도록 치밀하고 완벽한 영화다.

 

 

 

 

 


블랙스완 (2011)

Black Swan 
8.3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나탈리 포트만, 밀라 쿠니스, 뱅상 카셀, 바바라 허쉬, 위노나 라이더
정보
스릴러 | 미국 | 108 분 | 2011-02-24
글쓴이 평점  

 

81

 백조의 호수-정경(달빛이 비치는 호수) 블랙 스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