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를 심다/숲 책이야기

일곱번째 파도, 여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세요?

커피우유- 2011. 7. 19. 10:32

이곳 사람들은 무척이나 거칠고 고집스러운 일곱번째 파도가 있다고들 해요. 처음 여섯 번의 파도는 예측할 수 있고 크기가 엇비슷하대요. 연이어 이는 여섯 번의 파도는 깜짝 놀랄 만한 일 같은 건 만들어내지 않아요. 일관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여섯 번의 파도는 멀리서 보면 서로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늘 같은 목적지를 향하죠.

그러나 일곱번째 파도는 조심해야 해요. 일곱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게 단조로운 도움닫기를 함께 하면서 앞선 파도들에 자신을 맞추지요. 하지만 때로는 갑자기 밀려오기도 해요. 일곱번째 파도는 거리낌 없이, 천진하게, 반란을 일으키듯,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 만들어놓아요. 일곱번째 파도 사전에 '예전'이란 없어요. '지금'만 있을 뿐. 그리고 그뒤에는 모든 게 달라져요. 더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그건 그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 그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지요.

 

지금 한 시간째 여기 앉아 파도를 세면서 일곱번째 파도가 무엇을 몰고 올지 지켜보고 있어요. 아직 일곱번째 파도는 한 차례도 일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는 휴가 중이고 참을성도 많으니 느긋하게 기다릴래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있는 서해안 쪽에는 훈훈한 남풍이 세차고 불고 있어요. 에미.

 

 

 

 

라 고메라 섬의 플라야 데 알로헤라 호텔 발코니에 앉아 일곱번째 파도를 기다리는 에미. 그녀에게서 메일이 왔다.

수신인은 호흘라이트너가세 17번지 꼭대기 층의 레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의 후속작으로 둘의 이메일을 이어가는 소설 <일곱번째 파도> 

 

 

바다는 잔잔해요. 거울 같은 수면이 반짝거리고 해는 눈부시게 빛나죠. 나는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아요. 모든 게 제자리에 있고, 모든 게 제 궤도를 돌고 있으니까요. 변화의 기미는 없어요. 바람 한 점 없어요. -레오.

 

 

모든 게 제 궤도를 돌고 있는, 변화의 기미라고는 없는 바다를 지켜보던 레오와 일곱번째 파도를 기다리던 에미. 일관되게 한 길로 달려가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와 달리 후속작 <일곱번째 파도>에서 둘의 메일은 한꺼풀 베일 뒤로 숨는다.

사랑의 끈질긴 숨바꼭질을 참고 견디는 사랑만이 일곱번째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을까. 때로는 속마음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해야할 이야기를 제때 하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이메일들 속에서 함께 파도를 타고 오르내리며 에미처럼 일곱번째 파도를 기다리며 읽게 된다. 이 책.

사랑이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는 환상도 아니고 그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날을 함께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다니엘 글라타우어. 그가 제시하는 사랑은 '함께 지내기'다. 기대치를 즐기는 사랑이 아니라 정말 아름답게 같이 살기 위해 함께 머무는 사랑. 함께 지내기.

에미의 바람처럼 그들의 사랑에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은 없기를. 아름다운 '함께 지내기'만 있기를. 조용히 바래본다.

 

 

안녕, 레오. 나는 지금 라 고메라 섬의 플라야 데 알로헤라 호텔 발코니에 앉아 해안을 내다보고 있어요. 거무스름한 모래얼룩과 소금기를 머금은 하얀 거품이 바다로 이어지고, 더 깊은 바다로 눈길을 돌리면 하늘빛과 검푸른 색을 가르는,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에 가 닿게 돼요. 여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세요? 언제 두 사람이 함께 여기에 한 번 와 보세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에요. -에미

 

 

석달간의 공백, 여섯 번의 만남, 이년 반 동안의 이메일. 그 갈피마다 꽂혀 있는 수면 아래의 사랑을 찾아내면서 읽으면 좋다.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일곱번째 파도> 너무 감정적이지도, 너무 이성적이지도 않은 사랑이야기. 그러나 읽고 나면 사랑을 믿게 되는 이야기. 사랑은 현학적이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은 것. 참을성을 필요로 하는 것. 긴 시간을 견딘 사랑은 아름답다.

 

 


일곱번째 파도

저자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09-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들이 다시 이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이메일을 매개로 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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