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의 숲/숲 속의 짧은 생각

Let Me Fall, 가을 그리고 노을

커피우유- 2011. 8. 25. 09:13

가을은 노을로 다가온다.

늦여름 하늘가를 붉게 물들이며 짙은 푸르름으로 내려앉는다.

 

Fall.

가을을 Fall이라 이름붙인 건 얼마나 절묘한지.

지난 주 바라본 마로니에는 벌써 잎끝이 가장자리부터 말라가고 있었다.

플라타너스는 이미 잎 몇을 바삭 말린 채로 바닥에 떨구고 있었다.

메타세쿼이아잎도 생기를 잃은 채 축 늘어지는 때가 이때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는 속부터 말라가며 가을나무를 닮아간다. 가을이면. 꼭.

 

Let me fall.

Josh Groban처럼 차라리 "Let me fall"이라고 노래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계절과 함께 태어났으니 계절과 함께,그들과 함께 지고 피고 노래하고 숨죽이고 잠자는 게 옳겠지.

구름을 뭉실뭉실 피워대던 하늘도 가을이면 텅 빈 채로 실낱같은 구름만 몇 줄 날리듯이,

숲이, 나무가, 하늘을 가릴 듯 피워대던 잎들을 말리고 떨구는 것처럼.

 

그래도.

여름과 가을 그 사이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노을은 피어오를테니.

오래도록 저녁하늘을 붉게 지펴줄테니.

게다가 이 도시의 가을은 무척이나 짧다.

 

곧 지나갈 거야.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로. 그렇게.

돌아서면 노을 내려앉던 하늘이 푸른 어둠에 잠기는 것처럼. 순식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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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 Me Fall-Josh Gr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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